새벽 1시 41분
의미없이 켜져있는
29만원짜리 55인치 티비에서
푸르스름하게 올라가는 영화에 나온 이름들을 보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서
혼자 산지 11년째인데
퇴근하면 늘 시끄럽게 영화를 틀어놓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없는 여주인공을 만나 몇 마디 후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악당에게 잡혀간 여주인공을 찾으러
교통 신호를 어기고 이 차 저 차 다 때려박고 ㅎㅎ
총까지 쏴대면서 결국 여주인공을 구하고
멋드러진 해변에서 키스로 마무리 합니다.
그 전에 재생한 영화 주인공은
10대 넘는 외제 슈퍼카를 5층짜리 건물 지하에
따로 주차장까지 만들어두고
밤이면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그 외에도
자가 전용 비행기를 소유한 주인공
요트를 띄워두고 미녀들과 파티를 하는 주인공
4명의 미녀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넘치는 돈에 집사까지... 거기에다 무기를 팡팡 써도 뒷처리가 되는 주인공
2200원짜리 에너지음료 가격이 마음에 걸려
20분을 걸어 1700원에 파는 마트에 가는
저와는 참 다른 세상이죠...
슈퍼카는 커녕 매일 7시 50분이면
이 지하철의 정원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정도로
미어터지는 전쟁터에 끼어 출근하다보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파트 값 3억씩 뛴다는 뉴스도
코인으로 하루 아침에 몇 십억을 받았다는 뉴스도
주식도 오르고 올라 2,30대의 승리라는 뉴스도
백화점 고액 악세서리 한정판은 20분만에 동이 난다는 뉴스도
저멀리 영화 예고편 마냥 흘러갑니다.
가볍게 입을 바람막이 하나를 고르는데도
7만원과 8만 5천원 사이에서 하루를 고민합니다.
이러다 여름이 먼저 올것 같기도 하구요 ㅎㅎㅎ
사실 4월이면
익스X디아에서 평일 마닐라 공항 점심출발
왕복 항공권이 8,9만원까지 떨어지는 시즌이지요.
거기에 아드리아코 거리 호텔로 잡는다면
욕조있는 방도 1박에 3만원 정도 잡고 충분히 다녀올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시즌이 아닐 수 없는데요...
올해는 하아....
아퀴아노 공항에서 나와 1층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그랩타고 하이웨이 타고 말라떼로 들어오며
창문 열면 차안 가득 들어오는 퀴퀴한 냄새 ㅎㅎㅎ
아마다 호텔에 짐풀고 11층 올라가면
햇볕에 타들어갈 듯 뜨거운 바닥의 수영장
미지근한 물에 몸담고 있으면
머리 위로 넓게 펼쳐진 파란 하늘
파란 알의 선글라스 장착하고
내려와 황소곱창 맞은편 휘가로에서
조각케익과 커피 한잔하며
길거리 탐색하다 입장 준비를 하지요 ㅎㅎ
90분에 300페소
초이스 300페소
좀 더 이목을 끌고 싶다면 엘에이로 ㅎㅎㅎ
한 발 걸을 때마다 선택의 폭도 넓고
마냥 즐겁던
그 흥겹던 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네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키득 키득
뭐부터 마실건지
깔라만시 더 짜서 넣어줄지
무슨 노래 부를건지
키득 키득
내일 뭐하는지
로빈슨몰 가봤는지
그리고
같이... 가도 되는지
크으....
90분 첫 타임으로
많은 대화
많은 웃음
많은 노래
그리고 데이트 약속까지 가능한데 말이죠^^
대강 900페소면 모든 게 가능했었는데 말이죠....
가만히 손잡고 노래부르면
모든게 물흐르듯 흘러가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네요^^
가끔은 진짜 있었던 일들이었나 싶기도 할 정도로
그립고 그립습니다 ㅎㅎ